부서별사전공표

마도로스의 기개를 추억하며('17.6.28. 중앙일보)

마도로스의 기개를 추억하며('17.6.28. 중앙일보)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얼마 전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조사하여 발표한 재미있는 통계 분석 자료를 본 적이 있다. 1920년에서 1980년대까지의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를 빅데이터 기법으로 분석한 것인데,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근대 대중가요 가사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이라는 항목이었다. 가사 중 마도로스가 437회 등장하여 1위를 차지했으며 절반 이상이 60년대 노랫말에서 언급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어 Matroos에서 유래한 마도로스는 주로 외항선의 선원을 이르는 말로, 원양어선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60~70년대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주역이자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꿈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1957년 6월 29일 출항한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가 참치 조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것을 시작으로, 우리 원양어선원들은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참치, 명태, 오징어 등 값진 어획물들을 잡아 우리 항구로 돌아왔다.

 

  원양어선원들이 잡아 온 수산물들은 우리 국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는 한편,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산업 기반 시설이 빈약하여 외국에 수출할 만한 변변한 제품이 없던 시절, 원양어선원들이 피땀 흘려 잡아 온 수산물들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1971년 기준 원양수산물 수출액은 5천5백만 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약 10억 7천만 달러)의 약 5%에 달하였으며, 별도의 원료구입 비용이 소요되지 않아 외화가득률이 100%에 달해 국민 소득 향상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에서 조업하다 유명을 달리한 420여명의 원양어선원들 중 318분은 2013년까지 스페인 라스팔마스, 사모아 등 8개소의 묘역에 모셔져 있었다. 해양수산부는 순직 선원들을 고국으로 다시 모시는 것 또한 국가의 책무로 여겨 2014년부터 유가족의 신청을 받아 묘지를 국내로 이장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금년 6월 모셔온 6위까지 총 23위의 유골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금년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우리 경제의 디딤돌을 놓은 애국자로 꼽은 것처럼, 이역만리에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애쓴 우리 원양어선원들 또한 희생과 헌신으로 근대화를 이뤄낸 애국자로 불려야 할 것이다.

 

  60∼70년대 선망의 직업으로 불렸고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공로자이지만 오늘날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는,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인 마도로스 원양어선원. 29일 부산에서 열리는 ‘원양어업 60주년 기념식’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개척 정신을 기리는 조형물을 제막하며 원양어업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지금 원양어업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안국의 조업규제 강화로 원양어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으며, 선박 노후화 등으로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양수산부는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통해 주요 연안국과의 접점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조업·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또한 원양어선 현대화 사업을 활성화하여 어업 효율 향상 및 선박 안전성 강화를 추진하고, 양식․유통․가공 등 다양한 해외수산시설에 투자하여 단순히 ‘잡는 어업’에서 벗어나 원양어업의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등 산업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만선의 꿈을 안고 먼 바다로 거침없이 나섰던 원양어선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날 해양수산업을 지켜 나가는 데 본받아야 할 그들의 용기와 기개를 되새겨본다. 원양어업 6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우리 원양어업이 다시 힘차게 도약하여 ‘글로벌 해양강국’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