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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역사 인물] 조선과 당대 실학자를 일깨운 해양인 문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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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정보화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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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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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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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030
[해양역사 인물, 문순득]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이달의 해양역사 인물'
우리나라 최초의 필리핀어 통역사이자
조선과 당대 실학자를 일깨운 해양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문순득'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달의 해양역사 인물 15 홍어 장수의 표류기, 조선을 깨우다 문순득
1801년 8월, 제주도에 외국인들이 표류했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되돌려 보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9년이 지난 1810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문순득이란 홍어 장수가 나타나 제주도에 머무른 외국인들이 여송국(현재의 필리핀 루손섬) 사람임을 밝혀낸 것이다.
문순득 덕분에 외국인들은 무사히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잇었고 나라에서는 그의 공을 치하했다.
일개 홍어 장수가 어떻게 여송국의 말을 알 수 있었을까?
1801년 12월, 당시 25살이었던 문순득은 그의 고향인 우이도 주민들과 홍어를 잡으러 태사도(현재 태도)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다행히 조선과 교류가 있던 유구국(현재의 오키나와)에 닿아 몇 달을 지낸 뒤 청나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렘도 잠시, 비바람을 만나 또다시 표류하게 되었다.
표류 14일쨰, 문순득은 간신히 여송국에 도착했지만 조선과 왕래가 없던 곳인지라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다.
총명하고 입담이 좋은 문순득은 여송국의 말과 문화를 빠르게 익혔는데 훗날, 이때 배운 말이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중국 상인들을 돕는 일로 여비를 마련해 1803년 8월, 드디어 고향인 우이도로 돌아왔다.
정약전은 우이도에서 유배하던 중 문순득의 표류이야기를 기록해 <표해시 말>을 썼고, 동생 정약용은 문순득이 보고 온 화폐제도를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경세유표>에 반영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 선박에 대한 기록으로 알려진 <운곡선설>은 문순득이 눈에 담은 외국 선박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정약용의 제자 이강희가 썼다.
표류에도 좌정하지 않고 슬기롭게 어려움을 이겨낸 문순득.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필리핀어 통역사이자 조선과 당대 실학자를 일깨운 해양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다에서 길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해양수산부, 한국해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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