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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득의 표해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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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정보화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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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주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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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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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055
문순득의 이야기(표해시말)
1805년 신안군 우이도
정약전 : 이 홍어라는 놈은 묵은지에 탁배기랑 먹으면 정말 맛나는구만
정약전,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은 1801년(순조1년)신육난으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약전 : 홍어는 모양은 연잎과 같은데 암놈은 크고 수놈은 작다.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정약전 : 수산생물을 각 종류별로 명칭,분포, 형태, 습성과 그 이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조사하고 기록하자 이 책의 이름을 자산어보라고 해야지.
행인1 : 표류 3년 2개월 만에 고향 우이도로 돌아왔다는거야? 그렇다니까 두번이나 풍랑을 만나 멀리 여송까지 떠내려 갔다가 왔다더군
정약전 : 그게 무슨 소린가? 행인1 : 홍어를 내다 팔던 뱃사람 문순득이가 바다에 나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서 돌아 왔지 뭡니까
행인2 : 처음에는 유구국에 갔었다지? 행인1 : 그리고 여송에서 중국을 거쳐서 다시 돌아 왔다니... 대단한 사람일세. 정약전(혼잣말) :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 중국등 3개국을 돌다가 3년 2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 와?
정약전 : 홍어장수 문순득이라... 내가 한번 만나보자. 표류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면 좋은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을거야
문순득 : 예? 저의 표류담을 듣고 싶으시다고요? 정약전 : 그렇게 오랜 시간 먼 거리를 다녀왔다니 그 무용담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아 지필묵을 가져왔네. 술도 한 병 가져왔지.
문순득 : 마을 사람들은 제가 표류중에 접했던 다양한 문물에 대한 이야기와 경험을 믿어주질 않더라구요. 정약전 : 그래 어디를 갔었고 무슨 일을 겪었단 말인가?
문순득 : 처음에 홍어사러 집을나갈 때만해도 다시 돌아오는데 3년 2개월이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생각지도 못한 그놈의 풍랑을 만나는 바람에...
1801년(순조원년) 12월 문순득은 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 가지고 돌아오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됐다. 어부들 : 으악 풍랑이다. 사람살류
풍랑에 휩쓸려 떠내려간 곳은 당시 일본의 독립국이었던 유구국, 지금의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정약전 : 유구는 조선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이지. 문순득 : 그곳에서 여덟달을 있었지 뭡니까요. 필담과 몸짓으로 그들과 대화했는데 유구는 표류민들을 중국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하는 관례가 있더군요.
유구에서 머물렀던 8개월 생활을 마치고 중국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오려고 항해에 오른 문순득은 운이 없게 다시 풍랑을 만나게된다. 문순득 : 조공선 얻어타고 고향 가려다가 저승가게 됐네~ 사람살류
이번에 떠 내려간 곳은 여송국, 지금의 필리핀으로 다시 표착하였다. 때는 1802년 11월 1일이었다.
문순득 : 여송국에서는 현지 토속어를 익혀 소통하고 청나라 표류인과도 대화했죠. 정약전 : 호오~ 자네는 언어쪽에 재능이 있는가 보군
1803년 8월.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의 마카오인 광동 오문으로 떠난다.
문순득은 중국대륙을 1년 2개월에 걸쳐 이동하고 결국 자신의 고향인 우이도로 되돌아왔다. 문순득의 표류와 귀국 경로 : 흑산도, 류큐(오키나와), 난징, 베이징, 의주
정약전은 문순득이 보고 듣고 체험한 일본, 필리핀, 중국의 풍속과 가옥, 의복, 선박, 토산, 언어 등을 다채롭게 기록했다.
정약전 : 자네를 천초라 부르겠네,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 여행자 라는 뜻이지. 문순득 : 표류객이 아니라 세계여행자
정약전은 문순득의 경험담을 깔끔하게 정리 했다. 그리고 뒤쪽에는 문순득이 류큐와 여송에서 배웠다는 외국어들을 한글해석을 달아서 적었다. 그리고는 표지에 표해시말 이라고 적었다.
표류의 처음부터 끝까지. 문순득의 표류기인 표해시말은 문순득이 보고 듣고 체험한 일본, 필리핀, 중국의 풍속과 가옥, 의복, 선박, 토산, 언어 등을 다체롭게 기록했다.
히로시마대 다와타 교수 : 그가 이야기한 류큐사람들의 생활이나 의복, 음식에 대한 기록들은 민속학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게다가 오키나와의 전통 장례식 기록으로는 표해시말이 가장 오래된 자료일 것입니다.
그저 한낱 이야기 거리로 치부되어 잊혀질 표류객 문순득의 체험담은 정약전 선생의 붓끝을 통해 표해시말이라는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문순득 : 그의 파란 많은 생도 흥미롭지만 서남해 바다 한 쪽 우이도 출신의 홍어장사인 그가 우리에게 남긴 행동과 자세에서 본 받아야 할 점은 크다 할 것이다.
정약전은 문순득의 3년에 걸친 표류기를 95쪽 분량의 표해시말이라는 제하로 기록하였다. 이글을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강회(1774~1830)가 그의 문집 유암총서3에 실었다. 당시 포르투갈 식민지이던 마카오에도 청나라 관리가 문순득을 조사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문순득은 유구국에 기착하여 필담과 몸짓등으로 대화하고 여송국에서는 현지 토속어를 익혀 소통하고 청나라 표류인과도 대화했다. 이 경험을 살려 그는 귀국 후 제주도에 표류해온 여송국 난민들의 통역을 맡았다. 그 중에는 무려 9년 만에 필리핀 사람으로 밝혀져서 중국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조치를 받은 난민도 있었다. 이러한 문순득의 외교활동은 조선을 깨웠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의 공적을 헤아려 종2품 가선대부 공명첩을 내려주었다.
해양수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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