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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두번 도운 문순득, 세상을 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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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정보화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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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주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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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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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258
외국인 : 부인, 내가 집을 떠나온 지도 벌써 9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 당신은 건강한지 우리아이는 잘 태어났는지, 부모님은 잘 계신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외국인 : 나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소, 이곳에는 그 누구도 여송어를 아는 이가 없어서 여송의 위치도, 우리가 여송사람이라는 것조차 설명할 방도가 없소(여송-필리핀 루손섬), 동료 두명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고 남은 우리 셋은 하루하루 희망을 잃어가고 있소
외국인 : 돌아가고 싶소, 집으로 돌아가고 싶소
하늘이 두 번 도운 문순득 세상을 돕다
1801년 제주로 표류해온 여송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행인1 : 우리말을 모르시오? 행인2 : 어느나라 사람이오? 외국인 : ??? 조정에서도 이들의 처리에 곤란을 겪고 있던 그때
문순득 : 제가한번 그들과 대화해보겠습니다. 여송어를 할 줄 아는 자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었으니 그는 바로 우이도의 홍어장수 문순득이었습니다.
그 당시 조선은 필리핀과 단 한번도 교류한 적이 없었는데요. 문순득은 어떻게 여송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홍어장수였던 문순득은 1801년 12월 태사도에서 홍어를 사고 돌아오던 길에 풍랑을 만납니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그들은 유구국에 다다르게 되는데요(현재의 오키나와)
다행히 유구국은 조선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던 곳이라 조선인인 문순득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8개월간 유구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 중국 행 조공선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문순득 :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드디어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공선에 오르게 된 문순득
하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문순득을 태운 조공선은 또다시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문순득 : 너무하오!!
표류 끝에 여송국에 다다르게 됩니다. (현재의 필리핀 루손섬)
하지만 두 번의 표류에도 문순득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문순득 :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유구국에서와 같이 여송국에서도 9개월동안 그곳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였고 심지어 장사까지 하며 조선으로 돌아올 여비를 만듭니다.
[문순득의 표류와 귀국 여정] 흑산도 -> 일본 유구국(오키나와) -> 여송국(필리핀) -> 마카오 -> 중국 난징 문순득 : 멀리도 왔구나 -> 베이징 -> 의주 -> 조선 흑산도
그 후 1803년 마카오로 가는 상선을 타고 이동한 후 육로를 통해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집을 떠난 지 3년 2개월만인 1805년 6월 우이도로 돌아오게 됩니다. 문순득 : 집이다!
문순득은 그의 체험을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에게 전하게 되고, 정약전은 문순득의 표류기를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 것이 [표해시말]입니다. 자산 정약전 정약용의 형 [자산어보]를 남김
중국, 안남, 유구, 여송등의 언어, 풍속을 소개하고 있는 [표해시말]은 후에 정약용에게 전해져 외국의 화폐제도를 참고하여 화폐개혁안을 제안하게 되는 발판이 되어 주었고,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가 외국의 선박과 항해에 관해 기록한 [운곡선설]을 집필하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외국인 : 선생님!!! 덥 석,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는 살아서 가족을 못 볼거라 생각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문순득 :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향을 떠나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을 나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지요
1809년 문순득은 제주도에 머물던 여송국 표류민들의 말을 통역하여 그들을 9년만에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종 2품 가선대부 공명첩을 하사받게 됩니다.
두 번의 표류에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경험으로 널리 남을 도운 문순득 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양인물 입니다.
조최 : 국립해양박물관, 한국해양재단, 후원 : 해양수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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