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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8) 海Dream 4회(끝나지 않은 해적과의 전쟁)

  • 부서

    디지털소통팀

  • 담당자

    이정국

  • 등록일

    2018.12.07.

  • 조회수

    1136

<내레이션>

안녕하세요.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이수진 주무관입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캐러비안의 해적’의 포스터입니다. 디즈니사가 제작한 이 영화는 워낙 인기가 좋아서 5편까지 제작되었습니다. 조니 뎁이 연기한 해적선장 잭 스패로우는 모험을 즐기고 의협심이 강하며 여자를 보호할 줄 아는 매력적인 해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적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포악하고 잔인한 약탈집단이라고 봐야 맞습니다. 해적의 역사는 항해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튀레노이 해적에게 붙잡혔다가 그들을 온순한 돌고래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기원전 60년 로마에서는 젊은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붙잡힌 적이 있었는데요. 해적들은 군인 4천명의 연봉에 해당하는 몸값을 요구했고, 대담한 카이사르는 두 배 이상 더 내겠다며 40일을 연명하다가 돈을 지불한 후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해적들을 찾아가 모두 소탕하기도 했습니다. 7-8세기 지중해에서는 사라센 해적들이 휩쓸고 다녔습니다. 이들은 나침반을 활용할 줄 알았고, 항해술이 뛰어난 그리스인들을 선원으로 부리면서 많은 상선과 해안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오스티아 해전에서 패한 후에는 점차 세력이 약화됐지만, 900년이 지난 16세기에 ‘바르바리’라는 대규모 해적으로 되살아나서 3백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습니다. 해적 하면 떠오르는 이름, 바로 바이킹이죠. 이들은 AD 800년경부터 영국과 유럽 해안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바이킹은 맞바람을 이용하는 항법을 개발했고, 롱십(Longship)이라는 바이킹선으로 엄청 빠른 속도로 장기간 항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킹은 AD 1100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는데요. 1066년 노르망의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노르만 왕조를 열기도 했습니다. 신대륙 발견과 더불어 대항해시대를 맞으면서 해적들도 먼 바다를 무대로 활동하며 17-8세기에 걸쳐 해적의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이 시기에 해적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 해에서 많은 선박을 갖추고 조직적으로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또 ‘사략선’이라고 해서 자국 정부로부터 적국의 상선을 약탈해도 좋다는 증서를 받고 활동하는 해적선들도 있었습니다. 블랙 비어드, 바솔로뮤 로버츠, 헨리 모건 이런 역사적인 해적들과, 섬뜩한 해골 그림의 ‘졸리 로저’라는 해적깃발이 나온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해적선들이 활개를 치자 유럽 각국과 미국은 해군을 동원하여 무역선을 호송하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해적 소탕에 나서게 되었고, 19세기 초 대부분의 해적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동양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지속적으로 해적들이 극성을 부렸고, 중국 왕조 교체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14세기에서 16세기말까지 200년 동안, 우리는 왜구, 중국은 해구라 부르는 해적들이 선박과 연안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중국 해적 중에는 ‘정일수’라는 여자 해적두목도 있었는데요. 1810년 청나라 조정에 투항할 당시 그녀가 거느린 해적수가 무려 1만7천여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해적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지금도 해마다 200건 내외의 해적사고가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남아 해역, 아프리카 동부의 소말리아와 아덴만, 서부의 기니만 등이 해적 출몰이 잦은 곳입니다. 특히 올해 서아프리카 해역은 작년보다 2배 이상 해적사고가 증가해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해적퇴치협정을 맺어 공동대응에 나서는 한편,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선박의 안전 항해를 지원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2009년부터 청해부대를 아덴만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청해부대 최영함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 구출작전을 펼쳐 석해균 선장 등 선원 21명 전원을 구출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긴밀한 국제적 협력과 공조를 이루어 나간다면 해적 없는,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바다의 시대가 오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이수진 주무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